주말주택 '진화산방'
양수리를 좋아하는 부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댕댕이와 생태공원을 찾았다.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는 가끔 투닷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가곤했다. 양수리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얘기를 늘 했고 가끔 고향인 울산 얘기를 하며 선산이 있는 땅의 관리를 걱정하는 말을 그냥 하는 푸념 정도로만 생각하며, 정만 나누고 지냈더랬다. 양수리에 짓고 싶다던 집이 울산에 지어질 지는 건축주나 우리나 그때는 몰랐었다. 양수리 땅의 인연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울산의 땅은 자꾸 의도치 않게 엮이는 상황이 전개 되었다.
결국은 그렇게 그들이 바라던 집의 위치는 울산으로 결정되었고 늘 상 거주하기를 바라던 집에서 한시적인 머무름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집 지을 땅을 구하고 짓는 것은 노력이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또 한 번 확인한 프로젝트가 은편리 주말주택 ‘진화산방’이었다.
‘진화산방’
건축주가 조심스레 꺼낸 이름에서 집이 존재하는 의미는 바로 드러났다. ‘산방’에선 집이 고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었고, 건축주 부모님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온 ‘진화’에서는 부모님과 함께였던 유년의 추억이 이 집을 통해 가족들과 할부되길 기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경사진 땅은 고점을 기준으로 평탄화된 터라 낮은 쪽에선 3M가 넘는 콘크리트 축대가 형성되어 있다. 땅을 들어올리기 위해 쓰여 진 콘크리트 옹벽을 보면 거부감부터 들고는 했는데, 이 옹벽을 첫 대면하고는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는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들어 올려졌다기 보다는 자연스레 솟아오른 것 같은 이 땅의 모습에서, 집이 자라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축대와 집이 원래 한 몸인 양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태생적(주말주택)으로 클 필요가 없는 조건에서 위와 같은 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략이 필요했다.
건축주 가족에겐 이 곳이 은신처가 될 것이라 했다. 더해서 400km를 달려 올만큼 특별한 것이 이 집에 존재하길 기대했다. 그 특별함은 집 안이 아닌 집 밖에, 건축주의 기억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나고 자라며 늘 눈앞에 존재하던 국수봉 자락, 펼쳐진 능선이 그랬다. 그 풍경을 그저 바라보고 액자처럼 창으로 고정시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생활의 모습을 겹치고 정돈된 자연을 더해서 삭혀내고 싶었다. 발효된 풍경이 이 가족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길 기대했다.
그래서 L자 형태의 작은 집에 반원의 가벽으로 마당을 한정했다. 반원의 콘크리트 가벽은 기존 콘크리트 축대와 집을 연결시키는 장치이자 가족만의 내밀한 마당을 제공한다.
바라던 은신처이다.
마당에는 야외 욕조가 있고 나무 한그루가 그림자로 벽에 그림을 새긴다. 국수봉의 펼쳐진 능선을 잘 담아낼 위치에 가벽을 뚫고 가벽 너머의 산과 마당과 집안의 윈도우시트를 겹치게 했다. 생활의 모습과 풍경이 잘 섞이고 삭아서 발효된 풍경, 시김된 장소로서 의미를 가지길 바래본다.
집의 뒷편은 선산과 맞닿아 있다.
조상의 묘가 있고 수십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선산의 숲이 그대로 집으로 흐른다. 그래서 숲과 마주한 후정은 나무를 좋아하는 안주인의 장소다. 살며 좋아하는 나무를 채워갈 수 있도록 지금은 비워두고 방해받지 않고 홀로 차 한잔 즐길만한 데크와 큐블럭 담장을 두어 안온한 그녀만의 장소를 마련했다.
낮고 작은 집이라 가족의 중심 공간이 될 다이닝과 거실 공간 만큼은 체적을 키웠다. 2층까지 비워진 공간에 쪼개진 빛을 들여 벽에 새기니 순백의 공간에 활기가 돈다. 거실의 북동쪽 면은 전체가 창이다. 국수봉을 눈앞까지 끌고 오지만 향 덕분에 직사광선의 영향은 적어 편안한 빛을 들인다.
잠깐의 머무름이겠지만 가족이 이 집에서 평화롭기를 기대했다.
평화로운 쉼 속에서도 가족의 추억이 진하게 쌓이고 삭아 기억되었으면 더 할 나위가 없겠다.
건축개요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은편리 896-27, 896-30
용도: 단독주택
규모: 지상2층
대지면적: 579.00㎡
건축면적: 104.68㎡
연면적: 117.47㎡
건폐율: 18.08%
용적율: 20.29%
구조: 철근콘크리트 구조
사진: 최진보
시공: 아주건축(손무수)
설계: 투닷건축사사무소 주식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