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목조주택 '무위재'
블로그를 보시고 찾아오신 노부부는 여주의 안온한 땅에 집을 짓겠다하셨다.
집 짓겠다 결심한 일 년 동안 할머니는 바라는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셨고 그 바람은 소박하지만 세심히 어루만져야 할 것들이었다.
좋은 건축가를 더 만나보시는 것도 좋겠다 말씀드렸다.
서로 감정의 할부가 자연스러운 건축가를 만나셔야 설계나 집짓는 과정이 행복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선배 건축가 한분을 추천 드렸다.
그리고 얼마 후 장문의 이메일을 받았다.
연서를 읽듯 되새김질하며 읽은 메일의 끝은 이랬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저희는 조소장님과 함께 여주집을 짓고 싶습니다.
조소장님은 저희의 첫사랑입니다.
할아버지는 디자인 감리를 통해 책임을 다하는 태도가 믿음직스럽다고 하십니다.
조소장님 일이 너무 바쁘지 않으면, 저희가 조소장님과 잘 맞지 않는 게 아니면, 저희 집을 맡아주시겠습니까? "
이렇게 해서 여주집은 우리의 몫이 됐다.
영성, 따뜻함, 진실을 화두로 던지신 할머니의 마음에 어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생활을 기능적으로 담아내는 집이 목표가 아님은 할머니도, 나도 알고 있고 그래서 시작이 더 조심스러웠다.
여러 장의 스케치를 구겨가며 조심스럽게 잡은 개념은 시김이었다.
‘시김’은 사람의 손길 닿은 곳에 시간이 더해져 곰 삯아 깊은 맛을 내는 상태를 말한다.
잔재주를 부리기보다는 집이 땅에 원래부터 있었던 듯, 여주의 완만한 들판을 닮은 집이 자연스럽게 내려앉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 먹고 시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김’과 어울리는 건축 재료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결은 시김의 다른 이름이다.
나무를 두른 집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곱게 늙어가려면 눈, 비와 싸우면 안 되었다.
느린 변화, 곰삯을 시간을 담보하기 위한 깊은 처마를 계획했다.
산을 닮은 박공지붕을 올리고 안마당 부분은 파내었다.
비워진 안마당은 영성, 따뜻함, 진실이 시작되는 장소다.
세 단어를 아우르는 자연의 요소는 빛이다.
그 빛은 안온하고 편안하지만 때론 강렬히 쏟아져 만물을 비추기도 해야 한다.
한 낮의 빛은 마당 깊은 곳까지 다다르고 깔린 강자갈을 빛나게 할 것이다.
진실의 시간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하늘의 빛만 내려앉을 것이다.
천공의 안온한 빛.
그 빛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눈을 자극하지 않는 편안한 빛이다.
툇마루에 나와 앉으면, 백년 전에도 똑같았을 것만 같은 비워진 마당과 내 집을 바라보며 온전히 나에게 침잠하는 영성의 시간이 되길 기대했다.
할머니는 너무 큰 집은 싫다고 하셨다.
책을 좋아하는 할머니를 위한 서재, tv를 사랑하시는 할아버지를 위한 거실, 자손이 잠시 머물다 갈 방 정도면 된다고 하셨다.
대신 여지를 남겨 달라 하셨다.
이어 살아갈 누군가가 부족하지 않도록 여분의 공간을 남기면 좋겠다는 말에 마음이 넉넉해졌다.
'ㄷ‘자 집의 일부를 떼어내 할머니의 독서를 위한 별채를 만들고 본채와 사이는 비워 뒀다.
당장은 비 안 맞는 외부공간으로서 여러 쓰임을 다할 것이고 어느 날 누군가가 이 집에 살러 왔을 때는 아이의 방, 서재, 취미실 등으로 쓰여 질 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가족이 잠시 되어 보낸 일 년의 시간이 끝나간다.
가식과 허세가 아닌 영성과 진실의 마음으로 보낸 시간이었을지,
결국 잘 시김 되어갈 것인지,
마음이 무겁다.
건축개요
위치: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왕대리
용도: 단독주택
건축면적: 110.46 ㎡
연면적: 110.46 ㎡
건폐율: 19.97 %
용적률: 19.97 %
규 모: 지상1층
구 조: 일반 목구조
사 진: 최진보
시 공: KSPNC(장길완 대표)
설 계: 투닷건축사사무소 주식회사